미용실·피부미용실·머리방·머리나라·헤어숍·헤어사롱 등으로도 불린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으로 인하여 남성들의 머리모양에는 큰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지만, 여자들의 머리는 좀 더 오랫동안 옛모양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일본 등지의 유학생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머리모양에도 변화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미장원들이 생겨났다.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사 오엽주(吳葉舟)가 화신백화점에서 미장원을 개업한 이래, 곳곳에서 미장원들이 생겨났다. 이와 같은 미장원의 발생과 확산에는 당시의 이른바 신여성들이 선도적 구실을 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들어 젊은 여성들 사이에 단발이 유행하고, 1930년대 후반에 파머머리가 유행하자 미장원의 숫자는 급증하게 되었다. 광복 후 여성들의 머리모양은 유행의 물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고, 미장원도 전국 방방곡곡에 들어서게 되었다.
1953년 158개에 불과하였던 서울 시내의 미장원 숫자가 1959년 1,225개로 늘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의 이발소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여성생활의 안정과 사회참여도 증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머리모양만을 주안점으로 삼던 미장원이 차차 얼굴·피부·손톱·발톱 등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모든 일을 맡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화장도 미장원의 중요한 일로 등장하여, 특히 혼인할 신부를 대상으로 한 신부화장전문 미장원도 생기게 되었다. 업계 통계에 따르면 1988년 12월 당시 등록된 전국의 미장원 총수는 43,500개이던 것이, 2018년 말 현재는 약 11만 개로 늘어났고 업소의 명칭도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