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숙박업법상 숙박업소는 호텔·여관·여인숙으로 구분되며, 호텔은 그 중 최상급 숙박업소이다. 그 등급은 특급∼4급으로 나누어지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며, 등급별 시설기준은 교통부령으로 정한다.
우리나라에 호텔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서양인들의 내왕이 빈번해지면서부터이다. 당시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불편한 것이 숙박시설이었고, 그에 따라 서양인 상대의 호텔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은 1888년(고종 25) 일본인 호리(堀力太郎)가 인천에 세운 대불(大佛)호텔이다. 이 때에는 아직 경인선(京仁線)이 개통되기 이전이라 인천에 도착한 외국인들은 대개 하루 이상 인천에 머물렀기 때문에 호텔이 제일 먼저 생긴 것이다.
1902년에 독일여인 손탁(Sontag)이 서울 정동에 손탁호텔을 세웠다. 1910년 이후 더 많은 외국인이 출입하게 되자, 1912년 부산과 신의주에 각각 철도호텔을 세웠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국영호텔의 시초이다. 그 뒤로 대도시의 역사 부근에는 호텔들이 세워졌다.
1914년에 세워진 조선호텔도 처음에는 철도호텔로 문을 열었다. 1915년 4월 24일 이 호텔에서 전조선기자대회가 열렸는데, 이것이 호텔에서 큰 규모의 공식회합을 연 시초이다. 철도호텔 이후로는 1940년까지 주로 휴양지에 호텔들이 세워졌다.
당시 호텔시설을 보면 방에는 거의 욕실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각 방마다 탁상전화·세면소가 있었다. 또한 큰 식당과 사교실이 있어서 오늘날의 커피숍 구실을 하였으며, 주차장 시설과 옥상의 관망대도 있었다.
1920∼1930년대 호텔의 특징은 휴양지와 관광지의 호텔들이 실료(室料)를 숙박료의 의미보다 대실료의 의미로 받았다는 점이다.
호텔사업은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교통부가 직영하던 국영호텔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959년부터 국내 호텔의 재정비가 이루어져 오락실·휴게실, 그리고 내국인 투숙객을 위한 한식시설이 보완되고, 대부분의 지방 관광호텔들은 지방자치단체에 위탁경영을 하게 되었다.
1963년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외자도입·수출주도형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국제교류가 잦아짐은 물론 1970년대 이후 관광사업 또한 중요한 외화수입원으로 지목되어 국가전략산업화가 되자 고급 관광호텔의 수가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외국인만 호텔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고, 내국인도 그 이용이 점점 커짐에 따라 세계유명호텔과의 체인화를 유치하여 서구식 대규모 관광호텔 건설을 촉진함과 동시에 한국고유의 분위기를 살린 관광호텔 건설 등 호텔이 고층화·다양화하면서 단순한 숙박업소에 그치지 않고, 커피숍·사우나·식당·아케이드 등 편의·판매시설을 겸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중요 행사장으로 제공되는 등 그 기능이 다변화되고 있다. 1999년 상반기 현재 대한숙박협회에 등록된 호텔은 총 899개소(관광호텔 485개, 일반호텔 414개)인데, 앞으로 각종 국제행사의 유치, 개최로 대형 고급호텔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