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호텔로서,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의 영업이 번창하자 이에 자극받아 대불호텔의 바로 맞은편에 살던 중국사람 이태(怡泰)가 이 호텔을 외국인 상대로 개업하였다.
객실의 수는 8실이었고 2층으로 지어졌다. 아래층에서는 서양물건의 잡화상을 경영하였고 2층을 객실로 하였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고 일본의 한국에서의 이권장악이 노골화됨에 따라 구미인의 발길이 뜸해지고 수지가 맞지 않게 되자 그 뒤 요릿집으로 바뀌었다가, 1910년에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