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경연청전경, 이조좌랑,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해 검열에 등용되고, 1603년 경연청전경(經筵廳典經)을 거쳐, 설경(說經)이 되어 경연의 사무를 처리하였다. 이듬해에 사간이 되고, 대사간 허성(許筬)과 함께 임진왜란 때 공훈을 세운 공신들에 대한 녹훈을 공정히 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어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이 되었다.
뒤에 헌납(獻納)으로 전보되었다가 1605년 이조좌랑을 거쳐 이조정랑이 되었다. 같은 해 말 지평이 되었을 때 익명서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의 만류로 유임되었다. 1607년 교리가 되었으나, 1610년(광해군 2) 유영경사건(柳永慶事件)에 연루되어 관작을 삭탈당하고 생을 마쳤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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