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공

  • 역사
  • 인물
  • 남북국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신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시중을 역임한 귀족·관리.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시중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덕영 (한국교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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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신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시중을 역임한 귀족·관리.

내용

관등은 이찬(伊飡)이었다. 880년(헌강왕 6) 2월 예겸(乂謙)의 후임으로 시중에 임명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해 9월 시중(侍中) 헌강왕이 민공 등의 근신(近臣)과 함께 월상루(月上樓)에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민가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집집마다 가락이 끊이지 않음을 보고, 서울의 민가가 모두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 대신 숯으로 밥을 지을 정도로 융성하게 된 것은 모두 민공 등이 잘 보좌한 때문이라고 치하하였다고 한다. 헌강왕 때는 신라 하대의 정치적 불안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에 40여 금입택(金入宅)이 존재하였을 정도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중이었던 민공이 헌강왕을 잘 보필한 데도 어느 정도 기인한 듯하다. 특히, 민공은 6년 6개월 동안 시중직을 역임함으로써 신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시중직에 있었던 인물이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신라(新羅) 금입택고(金入宅考)」(이기동, 『진단학보(震檀學報)』 45, 1978)

  • - 「신라하대(新羅下代)의 집사부(執事部)」(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新羅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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