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평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도첨의참리,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급암(及庵)
  • 탄부(坦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흥(驪興)
  • 사망 연도1359년(공민왕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감찰대부|도첨의참리|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
  • 출생 연도1295년(충렬왕 2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홍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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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도첨의참리,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탄부(坦夫), 호는 급암(及庵). 찬성사 민적(閔頔)의 아들이며, 정승 김륜(金倫)의 사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산원·별장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으며,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예문춘추관수찬(藝文春秋館修撰)을 거쳐 예문응교(藝文應敎)·성균대사성이 되고, 1344년(충혜왕 5)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한 뒤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갔던 공으로 충정왕이 즉위한 1348년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가 되었으며, 그 뒤 수성병의협찬공신(輸誠秉義協贊功臣)의 호가 주어졌고,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에 이르렀다.

성품이 온아하며 친척들과 화목하고 교유를 잘 하였으며, 관직에 있을 때도 일을 처리하는 데 모나지 않았다. 시서를 즐기고 학문에 열중하여 당시 이제현(李齊賢)·정자후(鄭子厚) 등과 함께 문명(文名)이 높았다. 『동문선(東文選)』에 민사평의 시 9수가 전한다. 저서로는 『급암집(及菴集)』이 있으며, 1981년 보물 급암선생 시집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동문선(東文選)』

  • - 『급암집(及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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