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있는 섬.
개설
명칭 유래
자연환경
현황
연평도는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가까이 있다. 그로 인해 제1차 연평해전(1999년), 제2차 연평해전(2002년)과 연평도포격(2010년)과 같은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에 의한 교전과 도발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아픈 과거가 존재한다.
2021년 기준으로 대연평도와 소연평도가 속한 연평면의 전체 인구는 2,097명(남 1,360명, 여 737명)이고 세대 수는 1,428호이다.
토지 이용 현황은 논 0.39㎢, 밭 0.6㎢, 임야(林野) 5.28㎢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농산물로는 쌀 · 콩 · 고구마 · 땅콩 · 마늘 · 고추 등이 생산된다. 한때 조기 파시(波市)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을 형성했으나 현재는 명맥이 끊어지고 꽃게잡이 조업과 굴, 바지락 채취가 연평도 주민의 주요 소득원이 되고 있다.
대연평도의 동쪽에는 방파제(856m)가 설치된 2종 항인 연평도항이 있고, 남쪽 끝에는 등대가 있다. 연평도는 백령도(白翎島) · 대청도(大靑島) · 소청도(小靑島) 등과 함께 서해의 어업 중심이 되는 섬으로, 북서쪽으로 휴전선(休戰線)과 인접하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인 가치가 크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임경업(林慶業)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副食)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어,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면사무소 뒷산에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충민사(忠愍祠)라는 사당이 있다. 교통은 인천에서 정기 여객선이 운항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연평초등학교와 연평중고등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권혁재, 『한국지리; 각 지방의 자연과 생활』 (법문사, 1995)
- 김종혁 외, 『인천의 섬』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2004)
- 『도서지』 (내무부, 1985)
- 『옹진군통계연보』 (옹진군, 2008)
- 『한국도서백서』 (전라남도, 1996)
- 『한국지명요람』 (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 『2008군정백서』 (옹진군, 2008)
인터넷 자료
-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https://data.kma.go.kr/cmmn/main.do)
- 옹진군청(www.ongjin.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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