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암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지평, 승지,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장유(長孺)
차호(叉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6년(인조 14)
사망 연도
1693년(숙종 19)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주요 관직
지평|승지|함경도관찰사
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승지,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장유(長孺), 호는 차호(叉湖). 민세주(閔世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영(閔韺)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민응협(閔應協)이며, 어머니는 김수현(金壽賢)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지평·승지·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79년(숙종 5) 고산찰방(高山察訪) 조지겸(趙持謙)이 당시의 함경도관찰사인 이원록(李元祿)이 분수에 넘치게 역마(驛馬)를 탄다 하여 탄핵하였다. 이때 민암은 자기가 함경도관찰사 때의 그 곳 실정과 경험을 자세히 들어서, 이원록은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극구 변명하여 도리어 탄핵한 조지겸을 문초받게 한 사실은 유명하다.

1678년 동지사 겸 변무부사(冬至使兼辨誣副使: 변무부사는 당시 명나라에서 인조반정에 대하여 잘못 기록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파견된 사신임) 복평군(福平君) 이연(李㮒)과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에 귀국하였다. 그 뒤 이조참판을 거쳐 1680년 대사헌으로 있다가 경신대출척으로 남인(南人)이 실각하자 파직되었다.

1682년 서인(西人) 김중하(金重夏)로부터 모반한다는 무고(誣告)를 받았으나 조사 뒤 무사하였다. 1689년의 기사환국으로 다시 대사헌에 기용되어서는 이조판서 심재(沈梓)와 함께 서인 김수항(金壽恒)·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여 그들의 처형에 대한 강경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대제학·병조판서를 역임했고, 1691년 우의정에 승진했으며,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94년 김춘택(金春澤) 등이 숙종의 폐비인 민씨(閔氏)를 복위하는 음모가 있다는 고변(告變)이 있자, 남인의 영수이던 민암은 훈련대장 이의징(李義徵)과 함께 옥사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때 숙종은 갑자기 남인을 쫓아내고 서인을 등용하는 갑술옥사를 일으켰다. 이 옥사로 제주도 대정(大靜)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의 탄핵으로 곧 이의징과 더불어 사사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당의통략(黨議通略)』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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