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승지, 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62년 승지가 되었고, 1663년 양주목사가 되었으나 석실서원(石室書院)의 사액치제(賜額致祭) 때 전례(典禮)에 잘못이 있다고 해서 파직되었다. 그 뒤 곧 좌부승지로 복직되어 형조참의를 지내고, 1666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1668년 호조참판으로서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1669년 한성부판윤·관상감제조와 공조·이조·형조의 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670년 청사(淸使)를 보내는 반송사(伴送使)가 되었으며, 1671년 강화부유수를 지내고 1675년(숙종 1) 국장도감당상(國葬都監堂上)이 되었다. 이어 우참찬·대사헌·판의금부사·예조판서를 역임한 뒤 1677년 우찬성, 이듬해 우의정을 거쳐, 1680년 좌의정에 이르렀다.
원래 남인이었던 민희는 숙종의 즉위 이후 남인의 득세로 정계에서의 활약이 컸다. 특히, 송시열(宋時烈)을 영수로 하는 서인에 대한 의견 차이로 남인이 갈라질 때, 허적(許積)을 중심으로 하는 탁남(濁南)이 되어 더욱 조정에 중용되었다. 그러나 1680년의 경신환국 당시 남인이 실각될 때 관작을 삭탈당하고 위리안치되었다. 그 뒤 1686년에 풀려나서 전리(田里)로 돌아갔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신원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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