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정원동부승지, 장례원판결사, 승정원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60년(현종 1) 인천부사로 임명되어서는 그곳에 있는 자연도(紫燕島)에 대한 국방시설을 엄중히 하여 후환이 없게 하였다. 그 뒤 길주목사를 거쳐 광주부윤으로 초수(超授)되었으며, 내직에 들어와서는 승정원동부승지·장례원판결사·승정원승지를 역임하였다.
1669년(현종 10) 경주부사(慶州府使)로 임명되어서는 특히 궁핍한 부민에 대한 시혜가 돈독하여 부민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또 경주가 옛 도읍지인데도 고증할 만한 자료가 없자. 편자 미상의 『동경지』라는 경주 읍지를 저본으로 향중(鄕中) 인사 이채(李採) 등과 함께 이를 증보해서 『동경잡기(東京雜記)』3권을 펴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당호비고(堂號備考)』
- 『우암집(尤菴集)』
- 『명재유고(明齋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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