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승정원동부승지, 장례원판결사, 승정원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수월당(水月堂)
  • 장오(章五)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사망 연도1670년(현종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정원동부승지|장례원판결사|승정원승지
  • 출생 연도1629년(인조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갑주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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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정원동부승지, 장례원판결사, 승정원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장오(章五), 호는 수월당(水月堂).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민성휘(閔聖徽)이고, 아버지는 목사 민진량(閔晉亮)이며, 어머니는 첨정(僉正) 유대비(兪大備)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48년(인조 26) 진사가 되고 1653년(효종 4) 알성 문과에 장원하고, 성균관전적, 공조·예조·병조의 좌랑, 춘추관기사·황해도도사·병조정랑·성균관직강·장흥현감·충청도도사·시강원사서·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인천부사로 임명되어서는 그곳에 있는 자연도(紫燕島)에 대한 국방시설을 엄중히 하여 후환이 없게 하였다. 그 뒤 길주목사를 거쳐 광주부윤으로 초수(超授)되었으며, 내직에 들어와서는 승정원동부승지·장례원판결사·승정원승지를 역임하였다.

1669년(현종 10) 경주부사(慶州府使)로 임명되어서는 특히 궁핍한 부민에 대한 시혜가 돈독하여 부민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또 경주가 옛 도읍지인데도 고증할 만한 자료가 없자. 편자 미상의 『동경지』라는 경주 읍지를 저본으로 향중(鄕中) 인사 이채(李採) 등과 함께 이를 증보해서 『동경잡기(東京雜記)』3권을 펴냈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당호비고(堂號備考)』

  • - 『우암집(尤菴集)』

  • - 『명재유고(明齋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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