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창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정언, 부교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회(士會)
  • 화은(化隱)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사망 연도1725년(영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부교리|대사성
  • 출생 연도1654년(효종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갑주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민창도 글씨 미디어 정보

민창도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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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부교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회(士會), 호는 화은(化隱). 민영(閔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민응협(閔應協)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민희(閔熙)이며, 어머니는 정세구(鄭世矩)의 딸이다. 민흥도(閔興道)의 형이고, 민취도(閔就道)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8년(숙종 4)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0년 정언이 되었고, 1689년 부제학 유명현(柳命賢) 등이 홍문록(弘文錄)을 만들 때 1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발탁되었다.

그 해에 헌납·부교리를 지냈고,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하던 중 호당시(湖堂試)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숙종으로부터 상으로 표피(豹皮)를 받았다.

1690년 헌납으로 사서(司書)를 겸하였고, 이어 이조좌랑·승지를 거쳐 1691년 경상도관찰사, 이듬해 부제학을 거쳐, 1693년 이조참의, 1694년 대사성이 되었으며,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장수(長水)에 유배되었다. 특히,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곽산의 개원사(開元寺) 불량비문(佛糧碑文)과 영변의 보현사(普賢寺) 월저대사비문(月渚大師碑文)을 찬하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당의통략(黨議通略)』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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