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초명은 민영철(閔泳轍). 민익호(閔益鎬)의 아들로, 교리(校理) 민선호(閔善鎬)에게 입양되었다.
1885년(고종 22) 문과에 합격하고, 검열(檢閱)·설서(說書), 홍문관의 정자(正字)·주서(注書)·응교(應敎)·집의(執義)를 두루 거친 뒤 예조·병조·이조의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한성부의 좌·우윤을 지냈고, 예조·호조·형조의 참판을 역임한 뒤 1895년 궁내부특진관에 제수되었다. 다음 해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뒤에 전라도관찰사로 전임하고, 다시 상경하여 경무협판 겸 직제학(警務協辦兼直提學)을 거쳐 참찬(參贊)으로 승진하였다.
1901년 회계검사총장(會計檢査總長)과 비서원경(祕書院卿)을 겸하였다. 1902년 군부대신이 되었고, 그뒤 육군부장(陸軍副將)·군무총장(軍務總長)·철로총재(鐵路總裁)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