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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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조선후기 과천현감, 장악원첨정, 덕천군수 등을 역임한 척신.
이칭
  • 서하(棲霞)
  • 시호순간(純簡)
  • 원덕(元德)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사망 연도1858년(철종 9)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99년(정조 2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순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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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과천현감, 장악원첨정, 덕천군수 등을 역임한 척신.

개설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덕(元德), 호는 서하(棲霞).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아버지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민치록은 재취인 좌찬성 이규년(李奎年)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 뒤에 韓昌府夫人으로 추봉)와의 사이에서 명성황후를 낳았다.

1826년(순조 26) 문음(門蔭)으로 장릉참봉(章陵參奉)이 되었고, 그뒤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두루 거친 뒤 과천현감·임피현령(臨陂縣令) 등 지방수령으로 나가 활동하였다.

다시 상경하여 조지서별감(造紙署別監)·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역임하고 다시 덕천군수(德川郡守)로 지방행정을 맡았다. 1855년(철종 6) 선혜청낭청(宣惠廳郎廳)을 맡았고, 1857년 영주군수의 일을 맡아보았다.

민치록의 딸이 고종비로 입궁한 것은 민치록이 사망한 지 9년 뒤인 1866년(고종 3)의 일이다. 그뒤 영의정으로 추서되고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으로 봉작되었다. 민승호(閔升鎬)가 입양되어 민치록의 가계를 이었다. 시호는 순간(純簡)이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일성록(日省錄)』

  • - 『황후세보(皇后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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