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비인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덕(元德), 호는 서하(棲霞).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아버지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다.
민치록은 재취인 좌찬성 이규년(李奎年)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 뒤에 韓昌府夫人으로 추봉)와의 사이에서 명성황후를 낳았다.
1826년(순조 26) 문음(門蔭)으로 장릉참봉(章陵參奉)이 되었고, 그뒤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두루 거친 뒤 과천현감·임피현령(臨陂縣令) 등 지방수령으로 나가 활동하였다.
다시 상경하여 조지서별감(造紙署別監)·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역임하고 다시 덕천군수(德川郡守)로 지방행정을 맡았다. 1855년(철종 6) 선혜청낭청(宣惠廳郎廳)을 맡았고, 1857년 영주군수의 일을 맡아보았다.
민치록의 딸이 고종비로 입궁한 것은 민치록이 사망한 지 9년 뒤인 1866년(고종 3)의 일이다. 그뒤 영의정으로 추서되고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으로 봉작되었다. 민승호(閔升鎬)가 입양되어 민치록의 가계를 이었다. 시호는 순간(純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