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봉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무은박공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명경(明卿)
  • 무은(霧隱)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96년(선조 29)
  • 사망 연도1651년(효종 2)
  • 본관밀성(密城)
  • 출생지경기도 고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해권 (고려대학교도서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무은박공유고 미디어 정보

무은박공유고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무은박공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명경(明卿), 호는 무은(霧隱). 고양(高陽) 원당리(元唐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된 박중(朴仲)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 정연경(鄭延慶)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는 어려서부터 『맹자』의 호연장(浩然章)을 좋아하였고, 항상 자제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의리(義理)만은 지켜야 한다고 훈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을 만나자 부모를 모시고 남원(南原) 상천동(霜川洞)으로 들어가 은거(隱居)하면서 항상 강개분울(慷慨憤鬱)하였고, 꿈속에서 삼학사(三學士: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다가 인조가 항복한 뒤에 심양(瀋陽)으로 끌려가 처형당한 홍익한(洪翼漢)ㆍ윤집(尹集)ㆍ오달제(吳達濟)를 말한다.)를 만나 손을 잡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세마(洗馬) 이도중(李度中)은 그의 몽중초혼삼학사(夢中招魂三學士) 시를 차운하면서 살아 있는 열사(烈士)가 죽은 열사를 만났다고 칭송하였다. 1754년(영조 30) 통정대부 형조참의(通政大夫刑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무은박공유고(霧隱朴公遺稿)』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 『무은박공유고(霧隱朴公遺稿)』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