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천도교의 종법사 등을 역임한 지도자. 사회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이 결성되자 노동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26년 천도교장로인 권동진(權東鎭)의 지도로 천도교청년대표로 추천되어 6·10만세운동을 추진하였고, 권오설(權五卨)·민창식(閔昌植) 등과 더불어 조직과 연락하고 유인물을 인쇄하는 등 주요한 임무를 맡아 진행하다가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5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30년부터는 주로 천도교 활동에 전념하면서 천도교청년동맹 위원장·천도교청우당 조직부장·천도교중앙총부 감사위원 등을 지냈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가평에 은거하여 일제의 탄압을 피하였다.
광복 후 천도교활동에 헌신하여 천도교보국당 조직부장, 만화회 총무부장을 지냈으며, 6·25전쟁 후 천도교보국연맹(天道敎保國聯盟) 조직부장과 종의원(宗議院)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4·19 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에 참여, 부의장직을 맡아 통일운동에 앞장섰으며,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검거되어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66년 다시 천도교활동에만 주력하게 되었는데 상주선도사 겸 서울교구장을 지냈고, 1967년 천도교유지재단 상무이사로 있으면서 수운회관을 건설하였다. 1971년 천도교 최고 영예인 종법사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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