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옥천 출생. 호는 한원(寒園). 경상북도 김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로 올라와 김중업(金重業)의 화실과 남관(南寬)의 화실에서 그림을 익혔다. 1953년홍익대학교 미술학부를 졸업하였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기 전인 1946년 앙데팡당 미술협회전에 유화 2점을 출품하여 최고상인 협회장상을 수상하였다. 1948년에는 남관(南寬)의 지도를 받다가 1949년홍익대학교에 미술과가 생기자 제1회 신입생으로 입학하였다. 졸업 후 조교생활을 거쳐 1961년 부교수로 임명되었으나 1966년 사직하고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1962년 신상회(新象會), 1963년 구상전(具象展) 창립에 가담하여 그 연례전에 심정적 표현주의 성향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개인전을 거듭하며 개성적 특질을 부각시켰다. 1967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가족」을 출품하였다. 이 시기에는 문명 이전의 원초적 삶에 대한 동경을 화면에 표현하였다. 말과 소년, 불교, 신화 등 관념적 소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회백색, 청회색의 절제된 질감으로 이들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홍익대 교수를 그만둔 뒤 생활이 어려워지자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서민의 삶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작가가 체험한 서민의 생활모습과 치열한 삶의 체취를 생동감있는 붓놀림과 어두운 색조로 형상화 하였다. 1970년대부터 끊임없이 그려진 소재는 항구·어선 및 어부들의 생활 투쟁 모습 등이었다. 화면 분위기는 날씨가 음산하게 흐리고 폭풍이나 태풍이라도 밀려올 듯한 불안한 상황의 현실감이 충만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붓놀림과 색채는 난무하듯이 구사되었다. 서민층의 삶의 고난, 어선과 날씨와 바다의 두려움 그리고 어시장의 생존투쟁 현실 등을 그려 성실한 삶의 의미와 진실성을 말하고자 한 표현주의 작업과 작가정신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엄정한 리얼리즘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표작으로 「항구」(1975년), 「귀로」(1977년), 「어선」(1982년), 「어시장」(1983년), 「고선(古船)」(1983년), 「공사(工事)」(1988년), 「어부들」(1992년) 등이 있다.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 「희망」(1987년)이 소장되어 있다.
1996년 예술의전당에서 『박석호전』이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