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우복야, 추밀원부사, 참지정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무오정변
  • 사망 연도1264년(원종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복야|추밀원부사|참지정사 판예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정신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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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우복야, 추밀원부사, 참지정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최항(崔沆)의 문객출신이다.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가 수도를 강화로 천도한 뒤, 최항의 명령으로 태묘(太廟)를 지을 때 상장군으로서 독역사(督役史)가 되어 궁궐을 완성하여, 박성재의 아들이 고종에 의하여 진배파령(眞拜把領)으로 제수되었다.

1258년(고종 45) 최씨정권의 마지막 집정자 최의(崔竩)가 유경(柳璥)·김준(金俊)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 2군6위의 수장인 응양군 상장군의 신분으로 무오정변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그해 12월 우복야(右僕射)가 되었다. 1260년(원종 1)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승진되었으며, 1262년에는 참지정사 판예부사(參知政事判禮部事)로서 치사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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