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행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황해지단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해주부회의원, 황해도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 이칭新田豊吉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해주만세사건|대한독립단사건
  • 사망 연도1950년 9월 28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2년(고종 29) 11월 26일
  • 출생지평안남도 평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심재욱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황해지단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해주부회의원, 황해도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92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했다. 1914년 3월 조선총독부 의원 부속 의학강습소를 졸업, 1916년 황해도 해주에서 일신의원(日新醫院)을 개업했다. 1919년 3월 30일 황해도 해주 종로통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 7월 대한독립단 황해지단에 가입, 간부로 활동하던 중 같은 해 8월 대한독립단 파견대 구월산대(九月山隊)의 은율군수 최병혁(崔丙赫) 사살 사건 등에 연루되어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31년 5월 및 1933년 5월 해주읍회의원, 1937년 해주 신사(神社) 총대, 1938년 해주부회의원 등을 지냈다. 1939년 8월 해주 배영동지회(排英同志會) 부회장, 1940년 해주상공연합회장, 같은 해 10월 해주 국민총력 황해연맹 이사 등을 거쳐, 1941년 황해도회의원이 되었다. 1942년 10월에는 사상범 전향 임무를 담당하는 촉탁보호사(평양보호관찰소)에 임명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해주만세시위와 대한독립단 사건으로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나, 친일 행적으로 2011년 4월 서훈이 모두 취소되었다.

참고문헌

  • -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민족정기의 심판』(1949.4)

  • - 「해럴드경제」(인터넷판, 2015.4.3)

  • - 『독립신문(獨立新聞)』(1921.12.26)

  • - 『매일신보(每日申報)』

  •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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