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시보(時甫). 호는 일석(一石). 아버지는 사옹원참봉(司甕院參奉)에 증직된 박사삼(朴事三), 어머니는 배천조씨(白川趙氏)로 판서(判書)에 추증된 조응지(趙應祉)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재예가 뛰어나 대성의 기질이 있었는데 김장생에게 배우고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俊吉)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으므로 도학자의 인격을 닦었다. 1652년(효종 3) 진사시에 합격하여 목릉참봉(穆陵參奉)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거쳐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을 지낸 뒤 고향에 돌아와서 후진의 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인근에서 찾아와 배움을 청하는 사람으로 항상 문을 메웠다. 국기일에는 반드시 소식(素食)만 하였고 『주자서(朱子書)』가 바다와 같이 깊어서 모든 학문의 근원이 된다고 가르쳤다. 윤증(尹拯)이 스승인 송시열과 틈이 벌어지자 인간의 의리가 아니라고 꾸짖기도 했다.
저서로는 『일석유고(一石遺稿)』 2권이 있고, 글씨도 잘 써서 금석문자가 남아 있으며, 뒤에 송계서원(宋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