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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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중(慶仲)
  • 졸헌(拙軒)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598년(선조 3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좌랑|병조좌랑|사간원정언
  • 출생 연도1530년(중종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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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중(慶仲), 호는 졸헌(拙軒). 박임종(朴林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조년(朴兆年)이고, 아버지는 사간 박소(朴紹)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사부(洪士俯)의 딸이다. 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7세부터 유조순(柳祖詢)·성제원(成悌元)·이중호(李仲虎) 등에게서 배웠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9년(명종 4) 사마시에 합격, 1564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저작(承文院著作)·춘추관봉교(春秋館奉敎)·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감찰·예조좌랑·병조좌랑,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헌납(獻納)·장령(掌令), 사간,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사성(司成)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동서분당으로 당쟁이 일기 시작하자 한 때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힐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1577년(선조 10) 다시 관계에 나와 집의·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공조참의·호조참의를 거쳤다. 병조참의로 있을 때 당시 병조판서 이이(李珥)를 배척하는 상소는 받아들여지고 지지하는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보고 사직하였다.

1589년 병조참판에 제수되었고, 이후 대사헌,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참판 겸 부총관으로서 왕을 호종했고, 의주(義州) 행재소(行在所)에서 대사간·공조참판을 지냈다. 1593년 왕을 호종해 환도하던 중 해주에 이르러 병이 나 남아 있다가, 1595년 왕비를 호종해 환도한 뒤 형조참판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왕비를 호종하고 수안(遂安)까지 가서 이듬해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묘지는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에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상촌고(象村稿)』

  • - 『조선호남지(朝鮮湖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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