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윤중(允中), 호는 관재(觀齋). 구산현(龜山縣: 경상남도 창원) 옥정동(玉井洞)에서 출생.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박원묵(朴元默),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로 최재린(崔在麟)의 딸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이다.
3세에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6세에 글을 지어 신동(神童)이란 이름을 얻었다. 15세에 명경과(明經科)에 응시했으나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합격하지 못했고, 그 뒤로는 선비들이 분경(奔競: 엽관운동)하는 것을 보고 과거를 포기했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서찬규(徐贊奎)와 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서 성리학을 배웠다. 1888년(고종 25) 유림을 대표하여, 권상하(權尙夏)를 문묘배향(文廟配享)하도록 상소하였다.
1894년에 동학란이 일어나자 민심수습 차 내려온 순찰사(巡察使)에 시정5조(時政五條)의 개혁을 건의하였고, 1896년에는 시정(時政)의 편의 10조를 건의하는 등 몸은 초야에 있었으나 마음은 나라에 두어 충성을 다했다. 저서로 『관재집(觀齋集)』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