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숙도(淑道), 호는 경암(敬菴). 서울 출신. 부사(府使) 박운수(朴雲壽)의 아들이며, 박정양(朴定陽)의 아버지이다.
1855년(철종 6)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綏嬪朴氏)의 묘인 휘경원(徽慶園)을 천봉할 때 수빈의 칠촌친(七寸親)으로 종척(宗戚) 집사를 맡게 됨으로써 오위(五衛)의 부사용(副司勇)이 되었다. 1860년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한성부주부를 거쳐 이듬해 형조정랑을 지냈다.
1862년 강서현령(江西縣令)이 되어 「삼정이폐책(三政釐弊策)」을 올리고 1866년(고종 3) 재령군수, 1869년 호조정랑에 기용되어 경복궁을 중건하는 영건도감(營建都監)의 낭청(郎廳)으로 일했다.
1873년 사옹원첨정(司饔院僉正), 이듬해 광흥창영(廣興倉令)을 거쳐 1875년 강화부판관이 되고 이듬해 강화도조약 체결 때, 지방관으로 조선측 접견대관 신헌(申櫶)을 도왔다. 1876년 김천군수, 이듬해 전주판관·해주판관을 거쳐 1883년 무주부사가 되고, 1884년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임명되었다.
인품이 근엄하여 공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었다.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시문집으로 『경암유고(敬菴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