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0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되었던 독립 운동 단체.
개설
설립목적
기능과 역할
또한 일본 정부에는 ‘국제 공약에의 배신’을 나무라는 공한을 보내고 각국 정부에는 합병 무효를 선언하는 전문과 성명회의 선언서(이상설이 선언서를 기초하였고, 성명회 대표로 추대된 유인석이 보완하여 완성하였으며, 유인석 · 이상설 등 총 8,624명의 독립운동지사들의 서명이 첨부되었음)를 보내기로 하였다. 각국 정부에 보낸 전문 내용은 ‘대한일반인민총대 유인석(大韓一般人民總代 柳麟錫)’ 명의의 한문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청국 정부에는 그대로 보냈으나 기타 열강에는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발송하였다.
그날 밤 50여 명의 성명회 청년들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일본인과 거류지를 습격하기 시작하였다. 8월 25일에는 부녀자까지 가담하는 등 결사대 인원이 1천여 명으로 증가되었다. 이어 26일에는 주요 인물 50여 명이 블라디보스토크의 북쪽 인근에 있는 ‘친고재’에서 모임을 가지고 일본 영사관의 관할을 결사적으로 거부하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이범윤은 ‘두만강의 결빙기를 기다려 의병을 200명 단위의 부대로 편성, 북한 지역으로 진입시켜 총 병력 1만 명에 달하면 독립 전쟁을 전개한다.’는 제의를 의결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성명회는 취지서 및 선언서와 각 종 격문을 인쇄 · 반포함으로써 간도는 물론 시베리아 지방의 한인에게까지 활동을 더욱 확대시켜갔다. 그러나 9월 11일을 기하여 일본이 러시아에 대해 항의 제기와 주동 인사들의 체포, 인도를 요구하자, 러시아당국은 이상설 · 이범윤 등 성명회와 모체라 할 수 있는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의 간부 20여 명을 체포, 수감하고 한인의 모든 정치활동을 엄금하였다. 그 결과 더 이상의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 『한국사(韓國史)와 역사의식(歷史意識)』(윤병석, 인하대학교출판부, 1989)
- 『재발굴한국독립운동사(再發掘韓國獨立運動史)』 Ⅰ(한국일보사, 1987)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1(국사편찬위원회, 1965)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애국동지원호회, 195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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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공적인 편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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