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미호(眉湖). 충청남도 홍주(洪州: 지금의 홍성) 출신.
1906년 음력 4월 18일 전 참판 민종식(閔宗植)을 대장으로 하는 의병이 충청도 홍산에서 창의하여 서천(舒川)·남포(藍浦) 등지를 경유하면서 병력을 보강하였다.
4월 26일 홍주로 진격하여 일본군을 격파하고 홍주성을 점령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홍주성을 장악한 의병진은 진용을 정비하였는데 신보균은 유병소서기(儒兵所書記)에 임명되었다.
윤4월 9일 의병진에 대한 일본군의 대공세로 성은 마침내 함락되어 100여 명이 순국하고 신보균을 비롯한 80여 의병이 서울의 일본군사령부에 압송되어 심문을 받았다.
6월 상순에 70여 명은 석방되었으나 신보균은 이식(李栻)·남규진(南奎振)·유준근(柳濬根) 등과 함께 9인(洪州九義士)이 대마도감금으로 결정되었다.
6월 19일 대마도에 도착한 이들은 이즈하라[嚴原] 경비대에서 억류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7월 9일에는 최익현(崔益鉉)과 임병찬(林炳瓚)이 대마도로 유배되어 왔다.
11월 17일 최익현이 유배지에서 순절하자 의사들 모두가 흰 두건을 쓰고 장례집사가 되어 전제(奠祭)를 지냈다. 신보균은 대마도의 억류생활에도 우국충절에 관한 절구시를 많이 남겼다. 또한, 적의 감언이설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4년 만에 감금에서 방면되었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