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의용대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26년 1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지현 (인천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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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6년 1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개설

1926년 1월에 상해에서 나창헌(羅昌憲)·이유필(李裕弼)·박창세(朴昌世) 등 독립운동지사들의 주도 하에 조직되었다.

설립목적

이 단체는 상해 임시정부의 권위와 정신을 옹호 선양하며, 일제의 모든 시설을 파괴하고 적과 일제의 밀정으로 암약하는 한국인들을 습격 주살하여 적의 세력을 약화시켜 한국의 독립을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연원 및 변천

선언과 8개조의 대헌(隊憲)을 발표하고 1926년 1월 1일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의용대의 조직은 참모부·사령부·경리부로 구성되었다. 대장 1인과 대부(隊副) 3인의 간부를 두었으며, 18세 이상의 신체강건하고 용맹한 독립운동자를 대원으로 하였다. 의용대는 발족 후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 1926년 4월에는 대원의 수가 5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활동을 몇 가지 살펴본다. 1926년 2월 1일최병선(崔炳善)·장진원(張鎭元)·김광선(金光善) 등 대원이 일제 밀정 박제건(朴濟乾)을 살해하였다. 그 해 4월 8일에는 김광선·김창근(金昌根)·이수봉(李秀峰) 등 대원이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같은 해 9월 15일에도 시한폭탄으로 일본영사관을 폭파하였다. 이 밖에도 국내 거사를 위해 김광선·이영선(李英善)·고준택(高俊澤) 등 대원이 폭탄과 권총을 가지고 입국하다가 일제 관헌에게 잡힌 적이 있었다.

그 뒤 활동이 부진하게 되자 1933년 8월, 박창세를 중심으로 강창제(姜昌濟) 대원이 대칙(隊則)을 다시 작성하는 등 재정비해 석현구(石鉉九)·유인발(柳寅發) 같은 일제 주구를 살상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제 관헌의 탄압이 가중되어 간부 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면서 이후로는 특기할 만한 활동을 남기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민족운동사료 -중국편-』(대한민국국회도서관 편, 1976)

  • - 『한국독립운동사자료』 3(국사편찬위원회, 1973)

  • - 『조선통치사료』 10(김정주, 한국사료연구소, 1971)

  • - 『한국독립운동사』 4(국사편찬위원회, 1968)

  • - 『조선독립운동』 Ⅱ(김정명 편, 원서방,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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