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상단체.
내용
또한, 일본경찰의 간섭으로 끝내 공표되지는 못하였으나, 강령은 “농민단체와 노동단체를 결합하고, 단체위력에 의한 지주 및 자본가에 대항하여 노동계급사회의 실현을 기한다.”는 내용의 급진주의였다.
집행위원으로는 이정윤(李廷允)·한신교·이영·김사국(金思國) 등 21명이 선출되었으나, 이들은 거의가 서울청년회의 간부였기 때문에 이 동맹은 서울청년회의 울타리 같은 별동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동경(東京)에 있던 북성회(北星會)가 같은 해 11월 국내 사상단체로서 북풍회(北風會)를 조직하고, 한국의 대표적 사회주의통일전선임을 내세워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고자 했으므로, 서울청년회에서는 사상단체로서의 이 동맹을 조직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표를 파견하여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북풍회와 마찬가지로 승인을 얻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청년운동사(韓國靑年運動史)』(선우기성, 금문사, 1976)
- 『한국공산주의운동사(韓國共産主義運動史)』 2(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67)
- 「1920년대(年代) 한국(韓國)의 사회주의적청년운동(社會主義的靑年運動)-경성부(京城府)를 중심(中心)으로-」(조찬석, 『인천교육대학논문집(仁川敎育大學論文集)』 11,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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