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국정(國禎), 호는 눌암(訥庵). 박수경(朴受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강협(姜綊)의 딸이다. 다섯살 때 할아버지 박정원(朴挺元) 밑에서 수학하다가 종숙 박맹기(朴孟夔)로부터 배웠다.
1774년(영조 50) 광주(廣州)로 안정복(安鼎福)을 찾아가 『심경(心經)』의 의의(疑義)를 질문하였으며, 또 유규·유장원(柳長源)·김도행(金道行) 등에게 경지(經旨)를 묻기도 하였다. 김우옹(金宇顒)의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을 간행할 때 교정에 참여하였다.
1799년(정조 23) 영남 명현들의 사적을 거두어 올리라는 조정의 명이 있자 좌도(左道, 지금의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김한동(金翰東)·이정덕(李鼎德)이, 우도(右道, 지금의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정종로(鄭宗魯)와 함께 그가 임무를 맡았다. 1812년(순조 12)에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도내에 격문을 내어 창의(倡義), 토벌하고자 하던 중 난이 평정되었다.
박지서는 상소로 조식(曺植)의 문묘(文廟) 배향과 김성일(金誠一)의 서원(書院) 건립을 조정에 청원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눌암문집』 8권과 편저인 『태안박씨무첨록(泰安朴氏無忝錄)』·『동유심화(東儒心畫)』·『동현영적(東賢零蹟)』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