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정랑, 재령군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 때 순검사(巡檢使)로 국내 여러 성의 수축을 담당하여 서울로 진군하는 왜적에 대비하였으나 왜병과 싸우다 도망한 죄로 파면, 이듬해 분호조판서(分戶曹判書)에서 다시 파면되었다가 뒤에 영남 · 호남 지방에 파견되어 군량미의 조달을 담당하였다.
1594년에는 진휼사(賑恤使)가 되어 구호에 필요한 쌀 · 콩 등의 신속한 조달대책을 상소하여 백성의 구제에 진력하였다. 1597년 순검사 · 선공감제조(繕工監提調)를 역임하고, 1599년에는 충훈부(忠勳府)의 쌀 · 소금 등을 사적으로 이용하였다 하여 한때 불우하였으며, 1600년 남이공(南以恭) 등의 파당행위의 폐해를 상소하였다가 집권층에 밉게 보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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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가정25년병오9월○일생원진사시(嘉靖二十五年丙午九月○日生員進士試)』(국립중앙도서관[古602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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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공신 책록 : 『선조실록』 23권, 1589년(선조 22) 12월 29일. "박충간·이축·한응인·민인백·이수·강응기 등을 공신으로 삼으라는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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