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화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장령, 병조참의,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이(士邇)
  • 손재(巽齋), 읍건재(泣愆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767년(영조 4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전적|양성현감|사헌부장령|병조참의|충주목사
  • 출생 연도1680년(숙종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유한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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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장령, 병조참의,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初名)은 박치원(朴致遠), 자는 사이(士邇), 호는 읍건재(泣愆齋)·손재(巽齋).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이고, 아버지는 감역관(監役官) 박수기(朴守坖)이며, 어머니는 생원 이협진(李恊進)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8년(숙종 3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예조·병조의 좌랑 등을 거쳐 양성현감(陽城縣監)을 지냈다. 당시 경종은 나이가 30이 넘었는데도 아들이 없고 병이 많아 노론들은 왕세제(王世弟)의 책봉을 서둘렀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좌의정 이건명(李健命),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이명(李頤命),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조태채(趙泰采) 등 노론 4대신이 주축이 되어 왕의 동생인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였다.

그러자 소론파 우의정 조태구(趙泰耉), 사간 유봉휘(柳鳳輝) 등이 반대 소를 올려 노론·소론이 대결하게 되었다. 이 때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서 왕세제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상소했으나 조태구·최석항(崔錫恒) 등의 방해로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자 조태구가 어유룡(魚有龍)과 함께 환관들과 내통한 것을 들어 처벌을 청하였다. 그러자 김일경(金一鏡)의 상소에 의해 잡혀 들어가 문초를 받았다.

박치화는 굽히지 않고 언관의 권리를 주장해 왕이 놓아주려 했으나, 이어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신임사화가 일어나 노론이 실각하자 고성으로 유배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1725년(영조 1) 유배에서 풀려 돌아와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 사간을 역임하였다. 이 때 박치화의 계청(啓請)으로 노론들이 대부분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으로 있을 때는 『논어(論語)』를 강독하면서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의 예를 들어 영조의 탕평책이 시비를 흐린다는 풍자로 간(諫)하기도 하였다. 뒤에 병조참의로 있다가 어버이의 봉양을 위해 충주목사로 내려갔다. 이 때 공해(公廨)와 군기(軍器)를 수선하고 관청의 곡식을 채워서 어려움에 대비하였다.

1728년 사간으로 있을 때, 소론 일파의 극형을 주장하다가 탕평책을 시행하는 왕의 뜻을 거슬러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754년 유배에서 풀려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이듬해 영조에게 언로를 넓힐 것을 청했고, 1759년에는 왕세자(王世子: 뒤의 정조)의 대리가 지나치다고 상소하였다.

1764년 왕의 부름을 받고 들어가 영조의 친필이 하사되었다. 1767년 사포서제조(司圃署提調)를 겸하였다. 성품이 강개(慷慨)해 직언을 잘하였다.

참고문헌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 - 『밀양박씨규정공파대동보(密陽朴氏糾正公派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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