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1년(경종 1) 김일경(金一鏡)·이명의(李明誼)·이진유(李眞儒) 등과 함께 상소해,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 4대신(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의 죄를 성토해 신임옥사를 일으켰다. 그 뒤 소론 정권이 수립되자 지평·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광주부윤·부제학·승지·대사성·이조참의를 거쳐 참찬이 되었다.
1723년에는 강화유수가 되었는데, 이듬해 관병(觀兵: 군사의 위세를 검열함)의 제도를 부활하자고 건의해 허락을 얻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한 뒤 도승지가 되었으나 실록청(實錄廳)에 사사로이 출입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며, 이어 노론의 공격을 받고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728년(영조 4) 소론 급진파인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유배지에서 나와 반란에 가담한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의 군중으로 가 서울로 진군하려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도(竹島)에 숨었으며, 검모포(黔毛浦)로 가 잔당들과 다시 거사하려다가 무장현감 김몽좌(金夢佐)에게 붙잡혔다. 서울로 압송되어 능지처참되었고, 가문은 몰락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감난록(勘亂錄)』
- 『천의소감(闡義昭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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