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몽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양경(良卿)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인좌의 난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728년(영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헌부지평|대사성|이조참의
  • 출생 연도1668년(현종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조 (경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양경(良卿). 박황(朴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세환(朴世桓)이고, 아버지는 박태진(朴泰進)이며, 어머니는 김덕승(金德承)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0년(숙종 3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고, 이후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쳤다. 1716년 이른바 병신처분(丙申處分)으로 소론이 노론에 의해 밀려날 때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서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소론 중의 준소 계열(峻少系列)의 주요 인물로 활약하였다.

1721년(경종 1) 김일경(金一鏡)·이명의(李明誼)·이진유(李眞儒) 등과 함께 상소해,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 4대신(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의 죄를 성토해 신임옥사를 일으켰다. 그 뒤 소론 정권이 수립되자 지평·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광주부윤·부제학·승지·대사성·이조참의를 거쳐 참찬이 되었다.

1723년에는 강화유수가 되었는데, 이듬해 관병(觀兵: 군사의 위세를 검열함)의 제도를 부활하자고 건의해 허락을 얻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한 뒤 도승지가 되었으나 실록청(實錄廳)에 사사로이 출입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며, 이어 노론의 공격을 받고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728년(영조 4) 소론 급진파인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유배지에서 나와 반란에 가담한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의 군중으로 가 서울로 진군하려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도(竹島)에 숨었으며, 검모포(黔毛浦)로 가 잔당들과 다시 거사하려다가 무장현감 김몽좌(金夢佐)에게 붙잡혔다. 서울로 압송되어 능지처참되었고, 가문은 몰락하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감난록(勘亂錄)』

  • - 『천의소감(闡義昭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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