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재 ()

목차
건축
인물
해방 이후 한양대학교 중앙도서관과 대강당 등을 신축한 건축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7년
사망 연도
1981년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한양대학교 중앙도서관과 대강당 등을 신축한 건축가.
내용

전라남도 영암 출생. 어린 시절을 목포에서 보내고 1936년 일본으로 유학, 대판(大阪)관서공학교(關西工學校)에 입학하여 1942년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조선주택영단(현 주택공사)에 근무했다.

그의 활동은 광복 후 본격화되어 1946년 국제건축연구소를 창립하고, 한양대학 건축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광복 후의 건축계 상황은 참여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업적은 한양대학 건축과의 초석을 놓은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한국건축계에서 한양대학이 이루어낸 성과는 지대한 것으로서 제3공화국시대에 그 구실이 증대되었다.

그는 심혈을 기울여 1972년『서양건축사정론(西洋建築史精論)』을 집필하였는데, 이 책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건축철학으로서 의장론』도 그의 관심영역을 보여주는 논저가 되었다.

사후에 『남파(南坡) 박학재』가 제자들에 의해 출판되었고, 건축작품으로는 한양대학교 중앙도서관(1960)과 대강당(1960)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근대건축사(韓國近代建築史)의 재조명(再照明)」(김정동, 『건축사』, 건축사협회, 1987.5∼1989.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