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사복시소윤, 봉상시윤, 판회령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시호정무(貞武)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계유정난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453년(단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복시소윤|봉상시윤|판회령도호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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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사복시소윤, 봉상시윤, 판회령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419년(세종 1)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430년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에 임명되고 제주 경차관으로 파견됐는데, 이때 잘못된 보고를 올려 직첩을 삭탈당하였다. 1433년 직첩이 환급되고, 2월에 전 소윤으로서 호군 박원무(朴原茂)와 함께 함길도 변경에 출몰하는 야인 이만주(李滿住) 등의 실정과 파저강(婆猪江) 일대의 산천·도로·촌락의 대소를 정찰하고 돌아와 평안도절제사 최윤덕(崔潤德)의 부장으로 출정하여 파저강 일대의 여진을 정벌하였다.

6월에는 봉상시윤(奉常寺尹)이 되었으며 8월에 대호군을 지냈다. 1434년에는 상호군으로서 겸사복윤(兼司僕尹)이 되었다. 1436년 판회령도호부사(判會寧都護府使)가 되어 야인의 변경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회령절제사로 재임할 때 야인과 교류하고 결탁하여 형제를 칭하고 군신 간을 이간시켰으며, 여진의 세력이 커지자 병을 칭하고 군무를 태만하였다는 죄로 1440년 8월에 장(杖) 100대를 맞고 여연(閭延)으로 유배되었다.

1447년 삭주절제사(朔州節制使)로 발탁되었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공조참판, 다음 해에는 진하사(進賀使)의 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2년(단종 즉위년) 평안좌도 도절제사에, 다음 해에는 평안우도 도절제사가 되었다.

이어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首陽大君: 뒤의 세조)에 의하여 김종서(金宗瑞)의 심복이라는 이유로 파면된 이징옥(李澄玉)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었으나 이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이징옥에게 살해되었다. 1454년 정월, 의정부우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단종실록(端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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