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사복시소윤, 봉상시윤, 판회령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6월에는 봉상시윤(奉常寺尹)이 되었으며 8월에 대호군을 지냈다. 1434년에는 상호군으로서 겸사복윤(兼司僕尹)이 되었다. 1436년 판회령도호부사(判會寧都護府使)가 되어 야인의 변경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회령절제사로 재임할 때 야인과 교류하고 결탁하여 형제를 칭하고 군신 간을 이간시켰으며, 여진의 세력이 커지자 병을 칭하고 군무를 태만하였다는 죄로 1440년 8월에 장(杖) 100대를 맞고 여연(閭延)으로 유배되었다.
1447년 삭주절제사(朔州節制使)로 발탁되었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공조참판, 다음 해에는 진하사(進賀使)의 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2년(단종 즉위년) 평안좌도 도절제사에, 다음 해에는 평안우도 도절제사가 되었다.
이어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首陽大君: 뒤의 세조)에 의하여 김종서(金宗瑞)의 심복이라는 이유로 파면된 이징옥(李澄玉)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었으나 이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이징옥에게 살해되었다. 1454년 정월, 의정부우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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