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창원부사, 도승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리고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한 옥사와 1615년 인목대비유폐사건 등이 일어나자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조익(趙翼)이 장유(張維)에게 천거하여 벼슬길에 다시 나왔으며, 첨정(僉正)과 장례원판결사를 거쳐 승정원동부승지에 올랐다.
1624년(인조 2) 병으로 인하여 외직을 구하였으며, 창원부사로 임명되어서는 청렴과 덕정으로 여섯 번이나 포상이 내려졌다. 그 뒤 1629년 승지에 임명되고 경주부윤·삼척부사·도승지를 거쳐 1635년 이조참판 및 양양부사(襄陽府使)를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강도(江都)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을 얻어 서산에서 죽었다. 일찍이 장유·이식(李植)·정홍명(鄭弘溟) 등과 함께 문명을 떨쳤다. 저서로는 『관포집(灌圃集)』 3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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