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규합총서』 · 『청규박물지』 · 『빙허각고』 등을 저술한 조선후기 실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슬하에 4남 7녀를 두었는데 아들 1명과 딸 2명만을 남기고 모두 어려서 죽었다. 남편인 서유본은 40세가 넘어서 벼슬에 오르지만 숙부 서형수의 옥사 때문에 벼슬에서 일찍 물러났다. 이런 까닭에 집안이 경제적으로 곤궁해져서 빙허각 이씨는 몸소 차밭을 일구며 생활하기도 했다. 이때 자신의 생활지식과 실학서의 내용을 종합한 가정백과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를 저술하였다.
1822년(순조 22) 남편 서유본이 사망하자, 남편을 위해 「절명사(絶命詞)」를 짓고는, 이후 모든 인사(人事)를 끊은 뒤, 머리를 빗지 않고 얼굴을 씻지 않은 채 자리에 누워 19개월만인 1824년(순조 24)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빙허각고(憑虛閣稿)』에 수록된 그의 자작시 백 수십 수가 전하는데, 그 시에 우리 글로 대역(對譯)을 붙여 놓았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를 엮은 서유구(徐有榘)는 서유본의 아우로 어려서 그 형수 빙허각 이씨에게 글을 배웠다고 전한다.
저서로 『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 3부 11책이 전하는데, 제1부는 『규합총서』 5책으로 1809(순조9년)에 저술하였다. 제2부는 『청규박물지(淸閨博物志)』로 4책이며, 제3부는 『빙허각고략(憑虛閣稿略)』인데, 현존하는 것은 제1부인 『규합총서』와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소장의 『청규박물지』이다. 나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남편인 서유본의 문집인 『좌소산인문집』은 현재 일본의 봉좌문고(蓬左文庫)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 『석천유고(石泉遺稿)』
-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
- 『규합총서(閨閤叢書)』(정양완, 보진재, 1975)
- 『임원십육지 해제』(홍이섭, 서울대학교 고전간행회, 1966)
- 「담원문록」(『동아일보』 조간 2면, 1939.1.31)
- 정해은, 「조선후기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여성과 사회』7, 1997)
- 박영민, 「빙허각 이씨의 고증학적 태도와 유서 저술-『청규박물지』 「화목부」를 대상으로」(『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36, 201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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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원문의 단어, 구절, 문장 따위와 맞대어서 번역함. 또는 그런 번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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