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우참찬,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35세에 순창군수로 있을 때 농서(農書)를 구하는 정조의 윤음(綸音)에 접하고, 도 단위로 농학자를 한 사람씩 두어 각기 그 지방의 농업 기술을 조사, 연구하여 보고하게 한 다음, 그것을 토대로 내각에서 전국적인 농서로 정리, 편찬하도록 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제안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정조의 윤음으로 가학이기도 한 농학을 체계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서유구의 농학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로 집대성되지만, 그 이전에도 기초적 연구로서 농업 기술과 농지 경영을 주로 다룬 『행포지(杏浦志)』, 농업 경영과 유통 경제의 관련에 초점을 둔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 농업 정책에 관한 『경계책(經界策)』 등을 저술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아버지의 『해동농서(海東農書)』, 할아버지의 『고사신서(攷事新書)』의 농포문(農圃門), 그리고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과농소초(課農小抄)』·『북학의(北學議)』·『농가집성(農家集成)』·『색경(穡經)』 등 여러 국내 농서와 중국 문헌 등 800여 종을 참조하여 만년에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완성하였다.
1834년에 전라감사로 있으면서 때마침 흉년을 당한 이 고장 농민의 구황을 위해 구황 식물인 고구마 보급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강필리(姜必履)의 『감저보(甘藷譜)』, 김장순(金長淳)의 『감저신보(甘藷新譜)』 등과 중국·일본의 관계 농서를 참고하여 『종저보(種藷譜)』를 써서 보급하였다.
저술로는 이 밖에도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경솔지(鶊蟀志)』·『옹치지(饔치志)』·『누판고(鏤板考)』 등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신·구농서의 종합과 그 농학사상」(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연구』 Ⅱ, 일조각, 1971)
- 「임원십육지해제」(강만길, 『한국의 고전백선』, 신동아, 1969)
- 「임원십육지」(유원동, 『한국의 명저』, 현암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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