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허각전서 ()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의 『규합총서(閨閤叢書)』 · 『청규박물지(淸閨博物志)』 · 『빙허각고(憑虛閣稿)』 등을 수록한 전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조선 후기
저자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권책수
11책
판본
필사본
내용 요약

『빙허각전서』는 조선 후기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청규박물지』·『빙허각고』 등을 수록한 전집이다. 총 3부 1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규합총서』는 식생활, 의생활, 한의약, 시골 생활 등 여러 분야의 정보를 다루고 있고, 제2부 『청규박물지』는 천문, 지리, 세시(歲時), 금수(禽獸), 충어(蟲魚) 등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으며 제3부 『빙허각고』에는 자작시(自作詩) 한문 대역(漢文對譯), 『태교신기』의 발문(跋文), 부친을 위해 지은 「부문헌공묘표(父文獻公墓表)」를 수록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의 『규합총서(閨閤叢書)』 · 『청규박물지(淸閨博物志)』 · 『빙허각고(憑虛閣稿)』 등을 수록한 전집.
서지사항

『규합총서(閨閤叢書)』, 『청규박물지(淸閨博物志)』, 『빙허각고(憑虛閣稿)』의 총 3부 1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는 1939년 황해도 장단면(長湍面) 진서(津西)에 있는 빙허각(憑虛閣)의 주1인 달성 서씨(達城徐氏)의 후손 집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1939년 1월 31일 동아일보 조간(제6265호) 2면에 소개되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광복과 한국 전쟁의 혼란 속에서 문헌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한편, 『빙허각전서』 속의 『규합총서』와 『청규박물지』는 필사본과 목판본 등 다양한 이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대학교, 일본의 동경대학 등에 현전하고 있다.

구성과 내용

『빙허각전서』는 총 3부 11책으로 다음과 같이 나뉘어 있다.

제1부는 『규합총서』 필사본으로 1809년에 지은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주사의(酒食議): 술과 음식 갖은 반찬 등 식생활 전반을 다루고 있다. ② 봉임측(縫紝則): 복건(幅巾) · 털옷 · 도포 등 여러 가지 옷을 짓고 수를 놓고 물들이고 빨래하는 법 등 의생활 전반을 다루고 있다. ③ 산가락(山家樂): 밭 가는 주2, 꽃 기르기, 실과나무 가꾸기, 가축 기르기, 벌 치기 등 벼슬하지 않는 선비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시골 실생활의 여러 모습을 다루고 있다. ④ 청낭결(靑囊訣): 태교(胎敎)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구급방(救急方)을 제시하였다. 예시도 한의약 전반을 다루고 있다. ⑤ 술수략(術數略): 진택(鎭宅) · 정거(淨居) · 음양(陰陽) 주3 · 부주(符呪) · 축마(逐魔) 등 일체의 풍속을 다루고 있으며 미신에 빠짐을 예방하고자 하였다.

제2부 『청규박물지(淸閨博物志)』는 4책으로 1809년에 지은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천문(天文) · 지리(地理) ② 세시(歲時) · 초목(草木) ③ 금수(禽獸) · 충어(蟲魚) ④ 복식(服飾) · 음식(飮食)

총 4편으로 나뉘어 있고, 각 편은 따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본래 8편이었던 것을 4책으로 묶게 되면서 편의상 연관된 조목끼리 모아 놓은 것이다. 주4에 “이미 『규합총서』 5편을 이루매”라는 기록을 통해 저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1809년 기사(己巳) 동짓날로 기록된 『규합총서』를 엮은 뒤로 판단된다. 그 이상의 구체적인 사항은 알 수 없다.

『빙허각전서』의 제3부는 『빙허각고(憑虛閣稿)』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자작시(自作詩) 한문 대역(漢文對譯) ② 『태교신기(胎敎新記)』(1800) 발(跋) ③ 「부문헌공묘표(父文獻公墓表)」

백 수십 수의 자작시(自作詩)에 우리 글로 대역(對譯)을 붙여 놓았는데, 이것은 집안의 어린이와 딸, 며느리에게 한시(漢詩)를 알기 쉽게 이해시키려 한 의도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가 외숙모인 사주당 이씨(師朱堂李氏)의 『태교신기』에 주5을 단 것으로 미루어 보아, 조카딸인 빙허각 이씨의 학문적인 수준이 그 외숙모에게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부문헌공묘표(父文獻公墓表)」를 딸인 빙허각 이씨가 쓴 것으로 보아, 아버지인 이창수(李昌壽)에게도 학문적‧문학적인 수준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신작(申綽), 『석천유고(石泉遺稿)』
정인보(鄭寅普), 『담원문록(擔園文錄)』
서유본(徐有本),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규합총서(閨閤叢書)』

논문

박영민, 「빙허각 이씨의 고증학적 태도와 유서 저술-『청규박물지』 「화목부」를 대상으로」(『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36,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8)
박옥주,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0)

기타 자료

『동아일보』(1939. 1. 31.) 제6265호, 조간 2면 기사
주석
주1

시부모가 사는 집. 또는 남편의 집안. 우리말샘

주2

운이 좋거나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는 날. 우리말샘

주3

좋지 않게 여기어 피하거나 꺼림. 우리말샘

주4

동아일보 1939년 1월 31일자 조간 6265호 2면에 실림.

주5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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