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임(士任). 증 사복사정 박지몽(朴之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공조참의 박영기(朴榮基)이고, 아버지는 현감 박세렴(朴世廉)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병사(兵使) 박의장(朴毅長)의 아우이다.
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아이만호(阿耳萬戶)가 되었고, 그 뒤 선전관·제주판관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방장(助防將)이 되었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귀향하였다. 1596년(선조 29)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통신사의 부사가 되어 정사 황신(黃愼)과 더불어 강화의 중책을 띠고 일본에 갔다.
도요토미[豊臣秀吉]가 조선사절을 멸시, 국서에 답하지 않았으나 조금도 굴함이 없이 국가의 체면을 욕되게 하지 않고 돌아온 뒤 가자(加資: 품계가 오름)되었다. 그해 순천부사를 거쳐 상주목사 재임 중에 죽었다. 사후에 형 박의장과 함께 영해(寧海)의 구봉정사(九峰精舍)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