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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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아이만호, 선전관, 제주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사임(士任)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무안(務安)
  • 사망 연도1598년(선조 3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아이만호(阿耳萬戶)|선전관|제주판관
  • 출생 연도1558년(명종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원래 (순천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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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아이만호, 선전관, 제주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임(士任). 증 사복사정 박지몽(朴之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공조참의 박영기(朴榮基)이고, 아버지는 현감 박세렴(朴世廉)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병사(兵使) 박의장(朴毅長)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아이만호(阿耳萬戶)가 되었고, 그 뒤 선전관·제주판관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방장(助防將)이 되었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귀향하였다. 1596년(선조 29)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통신사의 부사가 되어 정사 황신(黃愼)과 더불어 강화의 중책을 띠고 일본에 갔다.

도요토미[豊臣秀吉]가 조선사절을 멸시, 국서에 답하지 않았으나 조금도 굴함이 없이 국가의 체면을 욕되게 하지 않고 돌아온 뒤 가자(加資: 품계가 오름)되었다. 그해 순천부사를 거쳐 상주목사 재임 중에 죽었다. 사후에 형 박의장과 함께 영해(寧海)의 구봉정사(九峰精舍)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학사집(鶴沙集)』

  • - 『대동야승(大東野乘)』

  • - 『무안박씨대동보(務安朴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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