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문관검열, 이조참의,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으며, 이듬해 청나라가 화의에 반대한 척화신(斥和臣) 17인의 압송을 요구하자, 격분한 박황은 “일대(一代)의 명사들을 모조리 호구(虎口: 호랑이의 굴)에 보낼 수 없다. 한두 사람만 보내고 버티자.”고 주장하여 15인은 무사할 수 있었다.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모시고 심양(瀋陽)에 갔다가 돌아와 1638년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이어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그때 김상헌(金尙憲)·정온(鄭蘊) 등을 모함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의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사직하였으나, 곧 대사간에 등용되고 또다시 심양에 불려갔다가 돌아와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1644년 심기원(沈器遠)의 역모에 연루되어 김해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전주부윤을 지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남계유고(南溪遺稿)』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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