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삼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노동당 중앙검사위원, 수매양정국장 부상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3년(고종 40)
  • 출생지함경남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염인호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노동당 중앙검사위원, 수매양정국장 부상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남도 출신. 1926년 1월 중국 광둥[廣東]의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생으로 입학, 같은 해 10월 졸업 임관하였으며, 1936년경 조선민족혁명당에 가담, 중국군 현역 대좌 신분으로 1938년 10월 우한[武漢]에서 결성된 조선의용대 제1지대(76명) 지대장이 되었다.

우한 함락 후 1지대를 이끌고 중국 제9전구에서 2년 동안 일본군과 싸웠으며, 조선의용대 확대간부회의(1940.11.重慶)의 결의에 따라 1941년 4월 의용대 주력을 이끌고 일본군과 전투가 치열하였던 화북전선으로 들어가 같은 해 7월 부대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개편, 그 지대장이 되어, 후자좡[湖家庄]전투(1941.12.)·반소탕전(1942.5.) 등 여러 전투를 이끌었다.

1942년 7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되면서 그 지대장으로, 같은 시기에 결성된 화북조선독립동맹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김무정(金武亭)·박일우(朴一禹)와 함께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만주로 진출하여 부대를 강화 발전시켰으며, 1945년 12월 김두봉(金枓奉)·한빈(韓斌) 등과 더불어 개인자격으로 입국, 조선신민당을 결성하였고, 1946년 7월과 1948년 3월의 북조선노동당대회에서 각각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초기 북한의 중앙훈련소 소장, 인민군 제1군단사령관을 지냈다. 1955년 11월 상업성 수매양정국장(收買糧政局長), 1956년 4월 노동당 중앙검사위원(제3차당대회), 1957년 수매양정국장 부상(副相, 1958년 해임), 1969년 11월 노동당 함흥시위원회 비서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공산주의운동사』5(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6)

  • - 『북한전서』하(극동문제연구소,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