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1524년 군기를 살피지 않고 도로 사정을 잘못 보고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파직되었다가 다시 병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527년에 함경북도병마절도사, 1530년에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과 충청도관찰사를 거쳤다. 1531년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참판과 전라도·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다.
1533년 다시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미 한번 역임한 바 있고 또 문신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반대가 있어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후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시종(侍從)을 역임하지 않았다 하여 공조참판으로 고쳐 임명되었다.
동지중추부사·형조참판·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지내고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뒤에 주인집 자손이 잔미(殘微)해 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 노상에서 만나면 반드시 예의를 차렸다 하며 청렴하고 겸공한 관리로 이름났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유사우록보유(東儒師友錄補遺)』상(上)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안당전(安塘傳)』 (안로)
- Commoners in Early Yi Dynasty CivilExaminations -An Aspect of Korean Social Structure, 1392∼1600(Yong-ho Choe, Journal of Asian Studies 33-4,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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