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룡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낙안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선봉으로 싸우다 전사한 무신·공신.
이칭
  • 낙천(樂天)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정유재란|노량해전
  • 본관온양(溫陽)
  • 사망 연도1598년(선조 3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낙안군수
  • 출생 연도1561년(명종 1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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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낙안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선봉으로 싸우다 전사한 무신·공신.

개설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낙천(樂天). 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 방호의(方好義)이고, 아버지는 방원복(方元福)이며, 어머니는 안악이씨(安岳李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굳이 무장이 되고자 하였음은 증조부인 방윤(方輪)이 동북면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순직할 때 창(槍)을 내려주면서 앞으로 국난이 있을 때 나라를 지키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원균(元均)의 휘하에 들어가서 크게 활약하였다.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낙안군수(樂安郡守)였던 방덕룡은 부사(府使) 이영남(李英男), 만호(萬戶) 송여종(宋汝悰)과 함께 절이도(折爾島)에서 복병(伏兵)을 하였다가 적을 협공하여 크게 이겼다. 이듬해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선봉이 되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형조참의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온양방씨족보(溫陽方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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