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삼례찰방,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형 방원진(房元震)과 재종형(再從兄) 방원량(房元亮)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에서 적을 대파하고 계속 진격하여 과천(果川)에 이르러 야간공격을 감행하여 적을 크게 무찌르고 노획물을 대량으로 거두었으나 곧이어 강화(講和)의 소식을 듣고서 해산하였다.
그 후 1646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 해에 삼례찰방(參禮察訪)에 재직하면서 주민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한편 다방면에 걸친 민폐를 혁신시켰으며, 국가의 시장정책(市場政策)의 허점을 간파하고 원활한 시장경제를 통해 부국(富國)의 실효를 거둘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외교정책(外交政策)·흉년구제책(凶年救濟策)·유언비어(流言蜚語)·역술(曆術) 등을 포함한 다방면에 매우 깊은 식견을 지녔으며, 한때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재임하였다. 저서로는 『지족와집(知足窩集)』 2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지족와집(知足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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