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맹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낭청, 호초참의, 일본국왕사신선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당(桂堂)
  • 재지(載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분성(盆城: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정랑|낭청|호초참의|일본국왕사신선위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익환 (진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낭청, 호초참의, 일본국왕사신선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재지(載之), 호는 계당(桂堂). 아버지는 배진(裵縉)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62년(세조 8)에 15세로 생원과와 진사과에 모두 장원하였으며, 그해 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갔다. 1464년 대책(對策)에서 3등으로 뽑혔으며, 1469년(예종 1)에 좌랑(佐郞)에서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재행(才行)을 겸비한 자를 뽑아 예문관에 겸관(兼官)시킬 때 발탁되었으며, 이듬해 경상도경차관(慶尙道敬差官)에 임명되었다. 1472년 원상(院相) 혁파를 주장한 박시형(朴時衡)을 피혐시킨 일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나 왕명으로 죄를 면하였으며, 1474년에 낭청(郞廳)으로서 국장(國葬)에 힘쓴 공으로 녹피(鹿皮) 한장을 하사받았다.

1475년 4월 일본 사신을 맞이하는 선위사(宣慰使)에 임명되었고, 7월에는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으로 일본에 파견될 통신사(通信使)에 낙점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도 일본 사신에 대한 선위사로 파견됐는데, 이때 자주철릭(紫紬帖裏)과 사슴가죽 신발을 하사받았다. 1479년 호조참의(戶曹參議)가 되었다. 직도(直道)로써 조정에 봉사하였고, 불교를 배척하였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예종실록(睿宗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영산읍지(靈山邑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