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직참봉을 역임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77년(숙종 3) 사직참봉(社稷參奉)을 제수받고 잠시 나가 있다가 곧 사직하고 돌아왔다. 1678년 상소로써 심학성리(心學性理)의 요체와 당론을 억제하고 현재(賢才)를 가려쓰는 데 대한 설을 개진하였으며, 또 동년배 유형원(柳馨遠)의 저서인 『반계수록(磻溪隨錄)』에 보인 전제(田制)·병제(兵制)·학제(學制) 등의 7조를 시행하자고 건의하여 숙종이 이를 가상하게 여겼다.
서울에서 전원으로 돌아온 뒤 만력동(萬曆洞)에 집을 짓고 만학당(晩學堂)이라 편액을 단 뒤 『대학(大學)』·『근사록(近思錄)』의 취지와 요지 및 각 경전의 난해하고 의심스러운 것 들을 손수 베껴가며, 심성정이기(心性情理氣)의 설을 깊이 연구하였다. 언제인가 유형원과의 왕복 논란에서 질문이 하도 조리있고 치밀하여 유형원도 그 학식과 도덕을 높이 칭송하였다 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화당유집(花堂遺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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