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아버지는 남경문(南景文)이다. 병조판서 남이(南怡)의 조부이다.
태종의 넷째딸 정선공주(貞善公主)와 결혼,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지고 1418년(세종 즉위년)에 동지총제(同知摠制), 이듬해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되었다.
1425년 평양선위사(平壤宣慰使)가 되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8년 공주가 살아 있을 때 남의 첩을 빼앗은 일이 있었고, 공주의 장례식에서 애도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헌릉(獻陵: 태종의 능)의 향축(香祝) 때 향배(香陪) 순서를 알지 못한다 하여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았다.
이에 세종으로부터 근신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여전히 경계하는 빛이 없이 욕심을 부려 부당히 수록(受祿), 이듬해 이천(利川)에 부처(付處)되었다가 1431년에 풀려났다. 1433년 황주선위사가 되고 이듬해 사은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2년(문종 2) 사사로이 불상(佛像)을 제작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시호는 소간(昭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