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순조 29)년에 평양성 외성(外城) 남쪽에서 발견된 성벽돌에 새겨진 명문에 그 이름이 보이는데, 그 내용은 “기유년(己酉年) 3월 21일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향하여 12리(里) 구간은 물구(物苟) 소형(小兄) 배수백두(俳須百頭)가 맡는다.”고 하였다.
여기서 배수백두(俳須百頭)를 동일인명으로 볼 수도 있고, 또 배수(俳須)를 인명, 백두(百頭)를 관직명으로 보기도 한다. 백두란 칭호는 다른 평양성 성벽돌 명문에도 보인다.
이에 의하면 배수는 성곽 축조시에 소형이란 관등을 갖고 백명 단위의 역부를 지휘하는 백두의 관직에 임명되어 장안성 외성(內城) 중 12리(里)거리의 성벽 축조를 감독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명문의 물구(物苟)는 배수 출신지인 지방의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 고구려 장안성은 522년(양원왕 8)에 쌓았고 589년(평원왕 28)에 장안성으로 천도하였다.
따라서 외성 축조를 시작한 연대인 기유년은 천도 후 3년 뒤에 589년(평원왕 31)에 비정되고 있으므로, 배수의 활동 시기도 대략 6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명문이 새겨진 성벽돌은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