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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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연안부사로 연안성을 굳게 지킨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사망 연도1601년(선조 3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연안부사
  • 출생 연도1541년(중종 3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호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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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연안부사로 연안성을 굳게 지킨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자는 중경(重卿). 아버지는 내금위(內禁衛)를 지낸 김희(金喜) 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도 언양(彦陽) 사람으로 1572년 별시 무과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연안성(延安城)을 굳게 지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은 서울과 평양을 함락시킨 뒤 그해 8월 왜장 오토모[大友吉統]가 배천(白川) · 평산을 거쳐 연안을 향해 공격해오고, 구로다[黑田長政]는 평양에서 해주를 지나 연안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연안부사로 있으면서 일단 적의 주력부대의 공격을 피하여 섬으로 가 있었다. 전 연안부사 이정암(李廷馣)이 황해도초토사에 임명되어 평산으로부터 연안에 도착하고, 배천사람 김덕함(金德諴) · 박춘영(朴春榮)도 각지로 격문을 보내어 수백인의 의병을 모아 이에 호응하였다.

그리하여 의병장 주덕윤(朱德潤) · 장응기(張應祺) · 조광정(趙光庭) 등과 연합, 1,400여 인을 모았으며, 초토사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8월 28일부터 4일간에 걸친 대접전 끝에 5,000여 명의 왜적을 물리치고 성을 굳게 지켰다. 이때의 전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서정일기(西征日記)』

  • - 『임진왜란사』(이경석, 임진전란사간행위원회, 1974)

주석

  • 주1

    : 무과 급제 : 『융경6년임신12월초2일문무과별시[방목](隆慶六年壬申十二月初二日文武科別試[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TK 2291.7 1746(1564a)])

  • 주2

    : 가선대부 가자 : 『선조실록』 31권, 1592년(선조 25) 10월 25일. "김대정·곽재우 등에게 가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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