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악

  • 예술·체육
  • 개념
  • 삼국
수나라 및 당나라의 궁중에서 백제의 음악인들이 연주한 음악. 백제기(百濟伎).
이칭
  • 이칭백제기(百濟伎)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방송 (영남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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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나라 및 당나라의 궁중에서 백제의 음악인들이 연주한 음악. 백제기(百濟伎).

내용

일명 ‘백제기(百濟伎)’ 라고 한다.

수나라 개황연간(開皇年間, 589∼600)초에 설치되었던 칠부악(七部樂) 중에는 들지 못하였으나, 신라기(新羅伎)·부남기(扶南伎)·강국기(康國伎)·돌궐기(突厥伎)·왜기(倭伎)와 함께 잡기(雜伎)의 하나로 수나라 궁중에서 연주되었다.

수나라 멸망 뒤, 당나라 중종 때 백제악공들이 죽자 폐지되었다가 개원연간(開元年間, 713∼741)에 복원되었다. 복원 당시에 쓰인 악기들은 쟁(箏)·적(笛)·도피필률(桃皮觱篥)·공후(箜篌) 등 네 가지였다.

그 당시 백제의 무용수들도 백제악에 포함되었는데, 이들은 큰 소매가 달린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고, 장포관(章甫冠)을 썼으며 가죽신을 신었다고『구당서』와『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 『구당서(舊唐書)』

  • - 『신당서(新唐書)』

  • - 『수서(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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