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세동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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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고려후기 학자 범세동의 무덤.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희태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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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고려후기 학자 범세동의 무덤.

내용

1998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산 94-1에 있다. 묘역은 야산의 정상 가까이에 남향으로 자리잡았는데 원형의 봉토분으로 지름은 8m이다.

상석 우측(향좌)에 서 있는 묘비는 머리와 몸체를 하나의 대리석으로 만들어 화강암 사각대좌에 맞추어 세웠다. 높이는 165㎝이다. 이수에는 조선 전기에 많이 볼 수 있는 연잎을 엎어놓은 무늬를 새기고 정상에 보주를 만들었다. 보주는 윗부분이 파손되었다.

비신 앞면의 오른쪽부터 음각 2행으로 ‘여조충신덕령부윤범공세동 배정부인장수이씨지묘(麗朝忠臣德寧府尹范公世東 配貞夫人長水李氏之墓)’라 세로로 쓰여 있고 두 행의 사이에 22자의 작은 글씨가 있었던 흔적이 있으나 끝부분의 ‘지묘(之墓)’를 제외하고는 판독하기 어렵다. 오른쪽 면에는 ‘오호관작성명이십이자불□완□유(嗚呼官爵姓名二十二字不□頑□有)’의 명문이 있다.

문인석은 높이 210㎝이며, 각이 진 관모를 쓰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홀을 들었다. 묘비 이수 부분의 연잎 무늬, 문인석의 각이 진 관모 등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경내에는 범세동의 존비속 제단이 있으며 상석·양석·동자석·망주석 등은 근래에 보충한 것이다.

범세동의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1369년(공민왕 18) 과거에 합격하여 덕령부윤(德寧府尹)·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낸 문관으로,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키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가 나주(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로 돌아왔다. 화해사전(華海師全)과 화동인물총기(話東物叢記)를 저술하였다.

참고문헌

  • - 「범세동선생묘」(송정현·이상식, 『문화재조사보고서』, 광주광역시, 1997)

  • - 『문화재도록』(광주광역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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