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와 교역이 성하였던 산둥반도와 장쑤성(江蘇省) 등 신라인의 왕래가 빈번하였던 곳에 있었던 신라인의 집단거주지를 신라방(新羅坊)이라 하며, 이곳에 세운 사찰은 신라원(新羅院)이라 하였다. 신라원은 당나라에 머물렀던 신라인의 신앙의지처이자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던 예배처였다. 흥덕왕 때 장보고가 산둥반도 적산촌(赤山村)에 세운 이 절은 신라원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다.
이 절은 해외 포교원(布敎院)의 구실을 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국인 신라와의 연락기관 구실도 하였으며, 신라에서 당나라로 간 승려는 물론, 일본의 승려들도 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많은 재력을 갖추고 있었던 이 절에는 한때 법청(法淸)·양현(諒賢)·성림(聖琳) 등 30여 명의 승려들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법행(法行)·충신(忠信)·궤범(軌範)·혜각(惠覺) 등의 선승(禪僧)들도 있었다.
연중행사는 신라의 예를 따라 8월 15일을 전후하여 3일 동안 축제를 열었고, 정기적인 강경회(講經會)를 여는 등 활발한 불교행사를 행하였다. 법화원의 의식은 신라의 법회의식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것으로서, 강경의식(講經儀式)·일일강의식(一日講儀式)·송경의식(誦經儀式)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일본 천태종의 원인(圓仁)이 찬술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권2 개성(開成) 4년(839) 11월 22일조에 수록되어 있다.
강경의식 때에는 진시(辰時)에 강경을 알리는 종을 울려서 대중을 집합시키고, 대중이 모두 법당에 모이면 강사(講師)가 등단하여 신라음(新羅音)으로 칭불(稱佛)하며, 대중이 함께 계향(戒香)·정향(定香)·혜향(慧香)·해탈향(解脫香)·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의 오분향례(五分香禮) 등을 합송하였다. 그 다음 강경할 제목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그 제목에 준하여 문답형식으로 경전을 강설하였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강경의식은 신라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불교의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매년 두 차례 2개월씩 계속된 이 강경의식에서 여름에는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겨울에는 『법화경』을 강하였다는 것도 주목된다.